12월 호국인물 <송요찬 육군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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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368회 작성일 13-12-0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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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16번의 주요 전투에서 빛나는 전공을 세운

‘공격작전의 명장’ 송요찬(宋堯讚·사진·1918. 2. 13~1980.

10. 19) 장군이 ‘12월의 호국 인물’로 선정되었다.

충남 청양 태생인 송요찬 장군은 해방 직후 군사영어학교에

입교해 1946년 5월 1일 육군소위로 임관했으며,

부산의 제5연대 소대장으로 교육훈련에 매진해 미군들로

부터 ‘타이거 송’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기 위해

수도사단장으로 임명되어 안강·기계전투에 참가했다.

이때 북한의 민족보위상인 최용건이 직접 이곳 전선까지

내려와서 독전하고 있었지만, 무려 7차에 걸친 북한군의

전면공세를 격파해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작전의 공로로 부임 20일 만에 장군(육군준장)으로

진급했다.

이후 인천상륙작전에 맞춰 북진작전을 실시하여 10월 1일

국군의 최선봉으로 38도선을 돌파했다.

또 그의 사단은 대관령 방어전투, 월비산 탈환전 등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서부전선보다 80km를 더 북진해 전 전선에서 최선두 진지를

점령한 부대가 되기도 했다.

정전 직전에는 육군8사단장으로서 1953년 6월 전개된

금성 동남지구전투에서 2개 사단에 달하는 적군을 격파하고

지형능선고지와 690고지를 탈환·확보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회에 걸친 태극무공훈장과

대한민국 최초의 미국 십자훈장을 수상하는 등

수많은 훈·포장을 수여받았다.

1960년 육군참모총장을 끝으로 예편한 후에는 내각수반 겸

국방부장관을 지내며 국군발전에 공헌하다가

1980년 10월19일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