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의병 활동을 벌이다가 순국한 임병찬(1851.2∼1916. 5) 의병장이 "2월의 호국인물"로 선정됐다.
선생은 전라북도 옥구군 출생으로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 되자 1906년 4월 태인의 무성서원을 근거로 대규모 의병을 일으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태인, 정읍, 순창, 곡성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벌이다가 순창전투에서 일본군과 격전 중 그의 스승인 최익현과 함께 체포됐다. 서울로 압송되고 나서 2년형을 선고받고 대마도로 유배됐다가 1907년에 귀국 했다. 1910년 한일병합으로 국권이 상실되자 선생은 고종의 밀지를 받아 독립의군부 전라남도 순무대장으로 임명돼 의병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 강화했다. 그러나 1914년 5월 동지인 김창식이 일본경찰에 체포되고 고문 끝에 독립의군부조직을 자백함에 따라 독립의군부의 국권회복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에도 선생은 한일병합의 부당성을 알리고 국권반환 및 일본군의 철병을 요구했다. 일본의 한국독립 보장만이 동양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역설하던 중 1914년 6월에 체포돼 거문도로 유배돼 1916년 5월 그곳에서 순국 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