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호국인물 <공군중장 최용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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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55회 작성일 15-06-0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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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호국 인물로 고(故) 최용덕 공군 중장을 선정됐다.

1898년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서 태어난 최용덕 중장은 일제의

국권 침탈이 있자 10대의 나이에 중국으로 망명했다.

이어 그는 ‘실력으로 싸워서 우리 주권을 회복하자’는 결심

으로 군에 지원해 1920년 중국 육군 군관학교와 공군 군관

교를 졸업했다.
 
그는 광복군 총사령부의 총무처장, 참모처장, 사령관 등을

역임했으며 중국 항일 군대와 입체작전을 펼치는 등 항일무장

투쟁에 앞장섰다.

방 후에는 공군 창설 주역 7명 중 한 명으로 활동했다.

그는 1948년 조선경비대 보병학교를 졸업한 후 육군 소위로

임관, 같은 해 7월 육군 항공부대 사령관으로 임명돼 항공분야

체제발전과 항공요원 양성에 기여했다. 

이후 대한민국 초대 국방차관에 임명돼 국군조직법 초안

작성 시 공군 독립의 근거를 마련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했다.

6ㆍ25 전쟁 당시에는 공군사관학교장으로 김포지구 경비사령

부를 편성, 김포기지를 방어했고, 1952년 제2대 공군참모총장

으로 취임해 휴전될 때까지 공군 항공작전을 총 지휘했다.

전쟁 이후에는 국산항공기 ‘부활호’를 제작하는 등 공군현대화

작업에 힘썼다.

정부는 그의 공을 기려 태극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

훈장 등을 추서했다.

그는 1956년 11월 공군 중장으로 예편, 1969년 8월 72세로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