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매진한 유동열(柳東說) 선생이 10월의 호국인물로 선정됐다.
1879년 평안북도 박천군에서 태어난 유 선생은 1904년에 대한제국 육군 기병참위로 임관했다. 이후 무관학교 교관, 시위대 기병대장, 참모국 제2과장 등을 역임했다.
유 선생은 1907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해산 당하자 안창호·양기탁·이갑 등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해 본격적인 반일운동에 참여했다.
일제의 감시로 국내 활동이 어려워지자 1909년 중국으로 망명한 유 선생은 군자금 모집을 위해 북경 등 각지에서 활동 하다 1911년 일제가 조작한 소위 "105인 사건"에 연루돼 1년6 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유 선생은 1913년 출옥 후 다시 중국으로 망명해 박은식·이상 설 등과 신한혁명당을 결성하며 구국활동을 계속했다. 1918년에는 김좌진·김동삼 등 만주지방 민족지도자들과 함께 무오독립선언서를 발표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후에는 참모총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만주로 이동하여 독립전쟁을 위한 군자금과 독립군 모집에 매진했다.
1939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참모장으로서 한국광복군 창설에 주력했으며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총사령부가 성립된 후에는 참모총장으로서 광복군을 통솔해 독립전쟁을 진두지휘 했다.
유 선생은 광복 후에는 미군정 초대 통위부장에 임명돼 조선국방경비대 창설을 주관하는 등 국군 창설의 토대를 닦았으나 6·25전쟁 당시 납북돼 북으로 끌려가던 중 평안북도 희천의 한 농가에서 숨을 거뒀다.
정부는 1989년 유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